이상하게 그린 초상화

자주 말하였지만, 사실 저는 그림을 못 그립니다. 그림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 맞겠군요. 미술 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았으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창피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소개를 할 때는,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실제로 출판 기획, 디자인 관련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맞습니다. 이상한 그림이 분명합니다. 운 좋게 미국에서는 그것이 꽤 괜찮은 장점입니다. […]

노인과 바다를 생각하면서

나는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멀리서, 소년은 소리 쳤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제가 드디어 잡았어요!” 노인은 전망 높은 집에서 마놀린을 바라본다. 그런데 대견한 생각 보다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분노가 올라 왔다. 아주 약간, 그러나 틀림없이 불편한 마음이었다.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노인은 진정을 한다. 그리고, 손을 흔들면서 소년에게 답례를 했다. 그 누구도 소년이 잡은 청새치를 보고 놀라지 […]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내는 들리지 않았다. 카페, 높은 천장에 커피 원두 푸대 자루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사내는 지저분하게 때가 타서 장식용인지 진짜인지 구분 조차 할 수 없는 커피 자루를 올려다 본다. 설마 진짜 원두를 담아 매달아 놓은 건 아니겠지, 사내가 딴청을 피우는 것을 눈치챈 여자, 달아오른 볼이 더 붉게 물든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결국 […]

암호 도둑 – 에필로그

존 레이먼, 페이스북을 전혀 하지 않아, 쉽지 않다. 그래도 말리사가 받은 이메일이 있으니 손쉽게 그가 소규모 투자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알아냈다. 흔히 말하는 제2금융권? 보다 더욱 나쁜 사채업자라는 것도 확인, 그렇다면 수위가 제일 높은 응징으로. 그는 지금도 여러 가지 소송이 복합적으로 맞불려 있다. 인생 참 바쁘게 산다. 개인 파산 중이라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것으로 짐작하는데, […]

암호 도둑 – 하

아파트 세탁실에서 스콧 고메즈, 말리사의 현재 남편, 과 우연히 마주쳤다. 평일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나는 재택 근무 중이었지만, 스콧은 그날 오프였는지 세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시끄럽죠?” 미안한 표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둘이 있는 세탁실이 무거웠는지 스콧이 먼저 내게 물었다. “아이들이잖아요.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내가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합시다. 싸워봐야 좋아질게 없잖아요.” 전쟁 […]

암호 도둑 – 중

MAC 어드레스가 남을 테니, 다른 노트북이 필요했다. 중고시장에서 구형 노트북을 하나 구해왔다. 윈도 비스타, 그녀는 최초에 산 컴퓨터를 그대로 사용 중이었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사진 관리 정도를 컴퓨터로 이용하고 있었다. 데스크톱은 늘 잠자기 모드로, 옛 기종이라 웹캠은 없었으니, 더는 볼게 없었다. 이제 뭐로 해코지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가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야후 메일, […]

암호 도둑 – 상

층간 소음.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런 이유로 소소한 분쟁과 다툼이 종종 일어난다. 나에게도 새로운 이웃이 위층으로 이사 왔다. 어린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 굉장한 출연을 예고했다. 소음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던 시대에 만들어진 아파트, 관리 사무소도 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좋아진 건 없다. 뉴저지, 저지 시티. 오래된 도시. 아파트 역시 100년 같아 […]

장독대

마당이 있는 집에 가면 언제나 한 귀퉁이에 항아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신주단지, 항아리를 모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땅콩강정과 깨강정을 만들어 작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두신 어머니. 어머니는 견과류를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어느 항아리에 담겨 있는 것을 알고 있어도 언제나 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했었죠. 우리 형제가 싸우지 않고 서로 […]